Brazil 여행기 4

남쪽에서 들려오는 소리

23일-
오늘은 조동진 목사님이 시무하시는 아순시온 장로교회에서 예배를 드리게 되어있다. 오늘 그 교회의 기도원에서 예배를 드린다고 하여 버스로 한 시간을 달려서 시온기도원에 도착했다. 예배 중간에 평복차림으로 우리가 성곡을 네곡 불렀다. 교인이 성인만 백여 명이 되었다.
기도원은 이십 에이커가 넘는다 했다. 성전을 사이에 두고 양 옆으로 남녀 숙소가 길게 이어져 있고, 식당과 친교실 외에 부속건물이 몇 개 더 있었다. 나무숲이 있는 구릉 뒤로 묘지까지 딸려있다고 했다.
파라과이에 한국 사람들이 많았을 때엔 교회도 부흥하여 이렇게 큰 기도원을 마련하고 활발히 신앙생활을 했던 모양이다. 지금은 사업에 크게 성공하여 쉽게 사업을 거두지 못할 형편이거나, 아주 가난하여 길이 없는 사람들만 남아있고, 중간층의 사람들은 브라질, 한국, 캐나다, 미국으로 이주했다고 한다.
예배후 교인들과 함께 점심을 먹고 호텔로 돌아왔다.
저녁 예배를 위해 어제의 반대색으로 드레스를 입고 양창근 목사님이 섬기시는 람바레 현지인 교회로 갔다. 작년에 있었던 교통사고의 참사로 인한 분쟁으로 항의 시위가 정문 앞에서 벌어지고 있다 했다.
우리는 버스를 뒷마당에 대고 뒷문으로 조용히 걸어 들어갔는데, 앞쪽에서 무슨 구호를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마음이 무겁고 낯선 곳에서 느끼는 약간의 공포심도 생겼다. 모두 진지한 마음으로 기도했다.
집회가 시작되자 그들의 뜨거운 찬송과 열정적인 메시지는 민족성과 선교지라는 의식을 더욱 치열하게 느끼게 했다. 우리는 성가 여섯 곡과 핸드벨, 가곡 한곡, 그리고 하와이안 댄스로 끝마무리를 했다. 후에 양창근 목사의 사모님이 초대하는 숯불구이로 마음이 편치 않을 만큼 황송한 대접을 받았다. 우리는 보답으로 식사 후에 반주 없이 즉석에서 ‘오빠생각, 낮에 나온 반달, 고향의 봄’을 함께 불러드렸다.

24일-
새벽 다섯 시 반에 기상하여 짐을 꾸리고 아침을 든든히 먹고 다시 버스로 이과수로 출발했다. 여섯 시간을 가야 할 참이다. 파라과이에서는 제일 좋은 호텔이어서 힐러리 여사도 묵고 갔다는 좋은 곳을 우리는 별로 즐길 새 없이 떠나는 아쉬움이 조금 있었다.
쌍 파울에서 속을 썩이던 전화카드는 여기서는 사용할 수 없었다. 그러나 여기는 컴퓨터실이 그냥 오픈 돼있어서 자유로 이 메일을 집으로 보낼 수 있었다. 쌍 파울에서는 통화는 못했는데도 호텔을 나오면서 통화료를 십 일불을 주어야 했다. 국제통화를 시도하면 연결이 안 되어도 로컬통화요금은 시도할 때마다 부과된다고 했다. 어처구니 없지만 말도 안통하고 내 기분과 시간만 아까우니 그냥 줘버렸다.
파라과이는 인구의 칠십 펴센트가 여자라 했다. 그런데도 젊은 남자는 자꾸 다른 나라로 빠져나간다했다. 교육이 부실하고 직업이 없기 때문이다. 그로인해 남자가 아주 귀하여 모든 노동을 여자들이 하고 남아있는 남자들은 그냥 놀고먹는 천국이란다. 자원은 많으나 위정자들은 부정부패로 물들어 있고 산업이 없으니 일자리도 없다. 되는 것도 없고 안 되는 것도 없는 나라라고 했다. 그러니 가난을 면할 길이 점점 더 없어보였다.

어제 갔었던 교회의 양창근 목사님은 이십여 년 전부터 원주민을 대상으로 사역하고 있었다. 작년에는 ‘Ariba Ninos(어린이여 일어나라)’ 라는 주제로 전국적인 선교대회를 열었다. 양 목사님이 가르쳐서 선교지로 나간 선교사들의 각 지역 어린이들 팔천 명을 초대하여 대회를 치뤘다고 하니 그 사역의 열매가 얼마나 방대한지 알만 했다.
정부의 무관심속에 버려져있는 어린이들에게 성경을 가르치고 앞날의 소망을 심어주는 일들을 정말 하나님의 사랑이 아니면 누가 감당할 수 있을까?

여행할 때는 잘 먹어야 한다는 생각이기도 했지만 파파야가 달고 향기롭다고, 커피가 진하고 맛있다고, 복숭아 주스가 신선하다고, 욕심껏 먹었으니 뻔하지 않은가. 근데 문제는 도중에 들를만한 화장실이 없는 거다. 있어도 여러 사람이 볼일을 다 보려면 시간이 걸리게 마련이다. 옷을 화장실 안에서 단정히 입고 나왔다가는 기다리는 사람들에게 혼쭐이 났다. 남자 화장실도 금새 여성전용으로 바뀌고, 어쩔수 없이 목사님은 남자 화장실 앞의 보초임무를 마다하실 수 없게 되었다.

파라과이 한국학교 강당에서다. 연주하는 도중에 며칠을 애 먹이던 소식이 갑자기 왔다. 이를 악물고 간신히 연주를 끝내고, 화장실을 찾아서 어둠 속에 치렁한 드레스 자락을 움켜쥐고 달음질을 치는데 하필 그곳은 운동장을 대각선으로 건너서야 화장실이 있었다. 가쁜 숨을 몰아쉬고 겨우 급한 고비를 넘기고 보니 종이가 없는 거다. 대책 없이 멍하고 있는데 때마침 구세주가 나타났다. 혼자서도 넉넉지 않은 것을 가지고 사이좋게 알뜰하게 처리했다. 그런데 나와 보니 수도는 있는데 물도 안 나왔다.

 나중에 이 가방을 잊어 버렸음
 강변의 빈민가와  붉은 흙
시온 기도원
 민속 공연

 

 민속공연
노변의 묘지
묘석을 작은 집모양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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