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azil 여행기 1

 

남쪽에서 들려오는 소리

4월 18일 2006

오후 두시 오 분 Varig 항공사의 비행기로 출발하기위해 로스안젤레스 국제공항에 열한시까지 모였다. 합창단원 서른아홉 명에 이 여행에 동참하신 남편이 네 분, 합하여 마흔셋이다.

남미 선교 순회공연이라지만 단원 중에는 교인이 아닌 사람도 더러 있고, 선교 반 여행 반의 목적이다.
일주일 전부터 소소한 것들은 준비했고, 떠나기 전날 대강의 짐을 꾸려두었는데도 새벽 네 시에 잠이 깼다. 잠을 좀 자둬야 할 것 같아서 눈을 꼭 감고 뒤채는데 어렸을 때 소풍 가는날같아 다시 잠이 올 것 같지 않았다. 할 수 없이 다섯 시가 조금 지나 일어났다. 세면도구까지 마저 다 챙겨서 가방을 싸고는 아침을 먹었다. 그런데도 아직도 시간이 세시간정도 남았다.
일정표에 보면 이과수에서 파라과이로 갈 때에 버스로 다섯 시간을 이동한다고 되어있었다. 짐작컨대 많이 지루할 것 같았다. 인터넷에서 좀 재미있는 것을 꺼내볼까 하는 마음으로 여기저기를 기웃거리는데 평소에 잘도 눈에 띄더니 찾으려니까 잘 나타나지 않았다. 그리고 또 옮길만한 것들을 찾기가 힘들었다. 결국 쓰레기만 눈이 팽팽 돌도록 헤치다가 얼마 안 되는 유머를 프린트해서 가방에 찔러 넣었다.
꼭 자기가 직접 데려다 주겠다고 고집을 부리며 새벽에 나간 남편이 시간이 다 돼오는데 나타나질 않았다. “공경이 체증 돋운다나?” 풀 방구리 생쥐 드나들 듯 자꾸 문밖을 내다보는데 내게 약속한 시간에서 십 분쯤 늦게 남편이 나타났다. 그래도 고마운 마음에 나무라지 않고 짐을 싣고 떠났다. 그런데 이게 웬일? 후리웨이를 타자마자 막히는 게 아닌가? 조바심이 일었지만 남편이 미안해할 것 같아 잠자코 있다 보니 아무 이유도 없이 다시 뚫렸다. 그러나 얼마 안가서 또 막혔다.
“아무래두 늦겠다 그치?”
“염려 마, 조금만 더 가면 카 풀 레인으로 가면 돼” 그런데 얼마쯤 가다보니 카 풀 레인까지도 막혀버렸다.
“이러다 비행기 못타는 거 아냐?”
“안가면 더 잘 됐지 뭐”
원 세상에! 그렇게 같이 가지고 조를 때는 자기는 전혀 가고 싶지 않다고 시치미를 뚝 떼더니, 약 오르게 이런 때에 이렇게 속마음을 표현하다니!
결국 나는 속을 까맣게 태우고 삼십분 늦게 꼴찌에서 두 번째로 도착했다.
공항은 무척 붐비고 복잡했고 오래 기다려서야 검표하고 짐을 부치고 나서, 합창단에서 준비해온 김밥을 공항 안 음식코너에서 먹었다. 줄의 끝에 있던 나는 시간이 없어서 선 밥을 겨우 면한 모래알 같은 김밥을 꾸역꾸역 물과 함께 넘기고 비행기를 탔다.
우리 일행은 비행기 뒷좌석에 몰려 있었다. 그 중에 내 좌석은 맨 뒤에 화장실 옆이다. 비행기가 떠나기 전부터 화장실냄새가 풍겨나왔다. 기내식은 좋았으나 음료수는 오렌지 쥬스와 도마도 쥬스, 콜라와 브라질산 소다수(과라나)로만 제한되고, 브라질 식 커피와 티가 있었다. 나중에 듣기로는 Varig 항공사는 문제가 있어 파산 중에 있다고 했다.
19일-
비행시간 열세시간 반이 걸려서 새벽 다섯 시 사십 오 분에 브라질 쌍 파울에 도착했다. 여름이 막 지나고 가을이라는데 새벽인데도 여기보다 덥고 습기가 있었다. 이제부터 모든 일정을 함께할 박지웅 목사님을 만나서 버스를 타고 호텔로 향했다. 아침 출근시간이라 좀 시간이 걸렸다. 잘 구획되지 않은 도로 사정이나 관리가 소홀해 보이는 상점들이 경제적으로 뒤떨어진 상태를 한눈에 짐작케 했다.
여덟시가 지나서 Luz Plaza 호텔에 도착하여 호텔 식당에서 아침부터 먹었다. 음식은 대체로 맛이 있었고 특히 파인애플과 파파야가 하와이에서처럼 맛이 있었다. 누군가가 변비에 좋다고 말하여 나도 파파야를 욕심껏 많이 먹었다. 여행 중엔 언제나 잠을 잘 못자고 또 변비로 고생하기 때문이다.
박 목사님은 현지의 돈을 두둑이 준비해 와서 필요한 돈을 바꿔주었다. 남은 돈은 돌아갈 때에 다시 바꿔주겠다고 약속하여 나도 백 불을 바꿨다. 환율은 2.1대 1 이었으나 이백 헤아스로 계산되었다. 남편이 아무것도 사오지 말라고 여러 번 당부 했지만 그래도 쓸 일이 왜 없겠는가? 여덟 명의 조장이 된 나는 조원과 함께 쓰려고 전화 카드도 십 오불을 주고 하나 샀다.
점심시간에 다시 모일 때까지 시간이 좀 있었다. 우선 짐을 풀어 샤워하고, 오늘과 내일의 시간표를 살핀 다음, 집에 전화를 걸었다. 통화카드를 이용하여 처음으로 전화를 걸어본다. 절차가 복잡하여 여러 단계의 많은 번호를 눌러야 했다. 카드를 살 때에 들었던 사용법으로는 안돼서 호텔 측에 물어서 해 보는데도 잘 되지 않았다. 다이얼이 너무 늦었으니 다시 시도하라는 녹음이 자꾸 나왔다. 이 카드는 네 시간짜리인데 이상하게도 룸메이트의 전화번호로 걸면 세 시간 삼십분이 남았다 하고 내 전화번호로 하면 이십 칠 분이 남았다고 하면서 똑같은 녹음만 나왔다. 결국 변변히 쉬지도 못하고 전화도 못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미국의 국제통화번호를 후론트에서 잘못 가르쳐준 때문이었다.
쌍 파울 시내에 있는 한식집(해운대)에서 로스구이와 불고기, 된장찌개와 김치찌개로 점심을 먹었다. 구수하면서도 토속적인 맛이 일품인 된장찌개와 보드랍고 연푸른 상추가 특히 맛이 있었다. 점심 후에 시내관광을 하고 저녁에는 쌍 파울 동양선교교회에서 공연을 하게 되어있었다.
버스를 타고 시내를 돌면서 중심부에 있는 시청과 역사적인 건물인 대 성당과 공원을 둘러보았다. 하얀 석조건물이 웅장하고 아름다웠다. 공원에는 많은 사람들이 붐비고 있었고 노점상과 약장수를 연상시키는 무리도 보였다. 여기서는 절대로 혼자 다녀서는 안 된다고 했다. 관광객 차림으로 카메라를 메고 있으면 달려들어 그냥 뺏어가는 무시무시한 사례도 있다고 했다. 사진을 찍고 싶었지만 버스에서 내리지 않았다. 각 나라의 상사, 지사와 대사관들이 몰려있는 거리에는 독특한 아름다운 빌딩들이 많이 있었다. 그런데 대부분의 건물이 페인트가 돼있지 않았다. 그냥 시멘트의 회색으로 돼있고, 오래된 것은 때가 끼어 검은 얼룩이 진 상태로 있어, 도시의 색이 대체로 우중충한 분위기였다. 건물을 그렇게 멋있게 지어놓고도 관리차원에서 경비가 들것을 고려하여 아예 처음부터 페인트를 하지 않는다 했다.
이월 중순부터는 한 달간을 삼바축제로 모든 행정이 마비된다 했다. 삼바축제장은 후리웨이 팔차선 정도의 포장된 통로를 사이에 두고 경기장 모양의 높은 스텐드가 창고 같은 삼층 건물과 함께 직선으로 까마득하게 길게 늘어서 있었다. 해마다 주제를 발표하고 그에 따라 선발대회를 하는데 한 번에 한 팀의 인원이 사천 명이라 하니 그 규모가 짐작이 안가게 어마어마했다. 그러니 전국에서 몰려온 참가자의 인원만으로도 붐비고 복잡할 수밖에. 여기서 우리는 찬란하고 기괴한 갖가지의 삼바의상을 이불 또는 삼불을 주고 빌려서 입고 사진을 찍었다.

삼바의 나라인 브라질은 또한 축구의 나라이기도 하다. 축구장으로 가서 미국 할리우드에 있는 명성의 거리처럼 유명 축구선수의 발 모형을 찍어놓은 곳을 보았다. Ronaldo Luiz Nazario de Lima 라는 긴 이름과 함께 찍힌 호나우도 선수의 발모양도 보고 펠레 선수의 것도 보았다. R 이 처음 나올 때는 하 발음이 되고 L 은 우 발음이 되어 그렇다 했다.

축구장 앞에서

호나우도의 발모양

삼바 축제장에서
의상들을 덧입고 무더위에도 함박웃음을
남국의 공주 같은 정미 길슨씨
삼바 축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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